1876년, 강화도 조약과 함께 인천을 포함한 부산, 원산의 3개 항구의 개항이 결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곳들 중 한 곳이 바로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해 있으니, 중구에서는 유독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들이 많다. 근대, 우리나라가 거쳐 온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는 중구의 여행지들을 둘러본다면 여행의 재미와 의미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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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인천 앞바다를 내다보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보인다.2
자유공원은 서양식 정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국적인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자유공원은 인천 응봉산에 마련된 공원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이 세워질 당시 한반도의 대형 항구들이 개항을 실시하면서 서구 열강이 조선으로 손쉽게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인천은 서울과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많은 서구 열강들이 입국하는 주된 통로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은 1888년 외국인을 위한 공원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서양식 공원인 탑골공원보다 약 9년 먼저 세워진 이 공원은 각국공원, 서공원, 만국공원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의 자유공원이라는 명칭으로 확정된다. 자유공원이라는 이름은 1957년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기념 동상이 건립되면서 만들어졌다.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힘썼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은 많은 이들에게 자유공원이란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그렇게 자유공원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후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인천 중구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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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가지와 항만시설, 서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유공원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비롯해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 맥아더 장군 동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자유공원은 의미 깊은 역사적 장소들을 한 번에 돌아보기에도 좋은 곳인데,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관측소가 세워진 인천 기상대다. 1904년 통감부 관측소로 기상관측업무를 시작한 이래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재편돼오다 한국 전쟁 이후 인천 기상대로 재편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또 찾아볼만한 곳이 있다면 제물포 구락부다. 인천이 조계지로 지정된 후, 인천에 사는 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교클럽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구락부라는 이름도 클럽이라는 영어단어를 일본식으로 음차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는 바부터 회의도 할 수 있었을만한 테이블 석까지 둘러보자면 그 당시 인천이 얼마나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기 쉬웠던 곳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대한민국 우정 업무의 효시, 인천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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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우체국은 현재까지 '인천중동우체국'이라는 이름으로 활약 중이다.2
인천우체국 앞에는 개국 110주년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인천 중구 향동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대한민국 근대 우정업무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해인 1884년에 우정총국이 설립됐고 그해 11월 우정총국 인천분국이 개원했으니 인천우체국이 서울보다 먼저 우편업무가 개시된 곳이 된 셈이다. 후에 근대식 우편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갑오개혁 이후 전국에 우정 업무를 관장하는 우체사가 설치되기 시작되었는데 인천에 설치된 우체사도 그중 하나였다.
인천우체사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통감부의 설치와 함께 인천우편국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소관으로 인천의 우정업무를 관할했다. 지금 볼 수 있는 근대식 건물은 1923년에 지어진 것이다. 건립할 때는 인천우편국이라는 이름이었고 광복 이후부터 인천우체국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시의 보호를 받고 있다. 멀리서 보기에도 독특한 모습의 이 건물은 동서양 건축양식이 조화된 모습으로 서 있다. 지금 볼 수 있는 이 외관은 1957년에 한 차례 복구공사를 끝마친 모습이라는 점을 참고해 두자.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교회와 등대, 내동 성공회성당과 팔미도 등대
자유공원, 인천우체국 등에 비해 인기가 덜하기는 하나, 내동 성공회성당과 용유동의 팔미도 등대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것들이다. 이곳을 돌아보는 것 또한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개항의 흔적을 찾아보는 데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성공회란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기독교 교파 중 하나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에 성공회가 선교된 것은 1890년의 일인데 영국 해군의 종군신부 코르피 주교와 미국인 내과의사 랜디스가 인천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선교활동을 위해 인천항 부근에 성당 건물을 건립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혹독한 근대 역사처럼 이곳 또한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고초를 겪는다.
처음에는 코르피 주교의 성공회 선교 성당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1902년부터 2년간 러시아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 있었던 기간 동안 성공회신학원으로 운영된다. 현재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성공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인천우체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때 파손된 건물을 전후 복원한 것이 지금의 모습인데, 중세풍의 건물 양식을 기본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양식인 목구조 처마 양식이 가미되어 있는 점이 재미를 더해 준다.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섬, 팔미도를 찾아간다면 섬 꼭대기에 세워진 하얀 등대를 볼 수 있다. 두 개의 섬이 뻗어 내린 모양이 마치 여덟 팔 자(八)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팔미도. 이곳에 우뚝 솟은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을 밝힌 근대식 등대이다. 1903년 준공이 완료된 팔미도 등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해상 교통의 길잡이가 되었다.
처음 불을 밝힌 이후 약 100여 년간 바닷길을 인도해 온 이 등대는 현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중구에 속한 섬 중 하나인 용유도에는 용유 8경이 있는데, 이 용유 8경 중 하나가 바로 팔미귀범(八尾歸帆)이다. 해질 무렵, 팔미도 등대 아래로 돌아오는 어선들의 모습을 팔미귀범이라 이르는 것이니 팔미도 등대를 찾을 때에는 저녁 시간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
최초로 가득한 역사의 도시, 인천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가득 품고 있다. 개항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근대 역사는 인천 지역 여기저기에 깊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근대문화를 살펴보기 위한 여행지로 인천 중구를 선택한다면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기에 인천 중구는 타임머신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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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김혜진 취재기자
발행2020년 04월 1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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